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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울치료도 안 통하는 …'진상' 과잉 시대

[백영옥의 밑줄 사용법] 거울치료도 안 통하는 …'진상' 과잉 시대

 
입력 : 2026.07.03 17:28
매일경제 지면 A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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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인의 허물 손가락질하며
내 행동은 정당방위라 믿어
부족함 깨닫는 능력 없기에
상식의 탈을 쓴 갑질 판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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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영옥 소설가
개그우먼 이수지의 유튜브 채널에서 어린이집 교사의 고단한 하루를 다룬 풍자 영상을 봤다. 흥미를 끈 건 댓글에 달린 수십 개의 대댓글이었다. 어린이집 역대급 진상 학부모가 이 영상 링크를 단톡방에 공유하며 다른 몰상식한 학부모들을 욕한다는 내용이었다. 그 밑으로 "우리 어린이집 진상도 똑같은 반응이었다!"는 현직 교사들의 제보가 줄을 이었다. 자신이 풍자의 대상인 줄은 꿈에도 모른 채, 타인의 무례함을 꾸짖는 기이한 풍경이다.

이런 현상은 리얼리티 연애 프로그램에서도 반복된다. 출연자의 성격과 언행이 여과 없이 노출되는 무대의 특성상 자신의 평소 모습이 그대로 노출될 텐데 대체 무슨 생각으로 공개 프로그램에 나오는지 모르겠다는 댓글이었다. 그 의문에 대한 답은 명쾌했다. 진상은 자신이 진상인 줄 절대 모른다는 것. 자신이 타인에게 줄 수 있는 피로감이나 상처의 총량을 계산할 줄 모르는 인지적 눈멂, 즉 메타인지의 파산이다.

인간은 왜 이토록 자신에게만 눈먼 사람이 될까. 심리학적 이유가 있다. 우리는 타인의 행동을 평가할 때는 철저한 '인격' 논리를 들이댄다. 저 사람이 저런 행동을 하는 건 인성이 나쁘고 소양이 부족하기 때문이라는 단정이다. 반면 자신의 행동에는 '상황' 논리를 가동시킨다. 나의 폭언과 요구는 평소 내 인품이 나빠서가 아니라 소중한 내 아이를 지키기 위해 어쩔 수 없는 정당한 방어라는 식이다. 여기에 '제3자 효과'까지 중첩된다. 풍자 영상을 보며 무례한 사람을 비웃지만 정작 자신이 교사에게 보내는 장문의 항의 카톡은 합리적 의견 개진이라 확신한다. 때로는 무의식적인 불편함을 감추기 위해 먼저 교사에게 "선생님, 그 영상 너무 웃기죠?"라고 동의를 구하는 선제적 자기방어 심리까지 가동된다. 자신은 비웃을 자격이 있는 정상인이라 믿으며 면죄부를 구하는 셈이다.

이런 사람들은 관계의 비용을 자기 쪽으로만 계산한다. 식당이나 병원, 매장에서도 같은 장면은 반복된다. 직원에게 반말을 하고, 작은 실수에 긴 훈계를 늘어놓고, 상대의 표정이 굳어도 멈추지 않는 사람이 있다. 그러나 그는 자신을 무례한 사람으로 기억하지 않는다. 나는 원래 솔직한 사람, 뒤끝 없는 사람, 할 말은 하는 사람이라고 여긴다.

문제는 그 솔직함의 비용을 언제나 남이 치른다는 데 있다. 자신에게는 성격이고, 타인에게는 극심한 피로다. 자신에게는 뒤끝 없음이고, 타인에게는 모욕의 기억이다. 심리학자 데이비드 더닝은 능력이 부족한 사람일수록 자신의 모자람을 인식하지 못한다고 밝혔다. 부족함을 알아차릴 능력마저 부족할 때, 무례는 자기 확신의 얼굴을 하고 나타난다.

메타인지의 부재는 단순한 개인의 결함을 넘어 점점 시대적 징후처럼 보인다. 자신의 이익만을 좇는 목소리 큰 뻔뻔한 자들의 전성시대다. 오죽하면 드라마에서 국민의 속을 뒤집는 자들을 합법적으로 응징하는 국가 기관이 등장할까 싶다. 법과 제도로 제어할 수 없는 괴물들을 향한 대중의 분노와 사적 제재의 열망이 투영된 결과가 지금 다양한 콘텐츠로 양산되고 있다.

과거에 우리는 극도의 뻔뻔함과 무례함을 정치인이나 특정 권력층의 전유물로 생각했다. 그러나 이제는 일부 학생과 학부모, 소시민이 자신을 약자라고 주장하며 민원이라는 절차를 무기 삼아 교사나 공무원을 압박하는 일이 벌어진다. 사적 제재와 참교육 서사가 반복해서 소비되는 현상은 우연이 아니다. 말과 대화, 상식적인 거울 치료로는 깨부술 수 없는 단단한 자기중심주의에 대한 대중의 답답함을 드라마가 제대로 건드린 것이다. 거울을 보며 타인의 허물만 손가락질하는 그 눈먼 당당함이 사회 안전망을 흔들고 있다. 진짜 무서운 것은 악의가 아니다. 자신이 언제나 정의롭고 상식적이라 믿는 지독한 무능과 불감증이다.

[백영옥 소설가]